만화인 광장

진짜 한국 만화의 날은 최초의 한국 만화 <삽화>가 발표된 날입니다 (대조영)

작성자
대조영
작성일
2018-11-03 17:27
조회
188
한국 만화계의 발전을 위해 힘쓰시고 계시는 한국의 모든 만화가, 만화 시나리오 작가, 문화 칼럼니스트, 만화학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 문학, 만화,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며 이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름 없는 젊은이입니다. 13번째 만화의 날을 축하드립니다. 이 만화의 날에 이 메일을 여러분께 보내는 것은 과연 한국 만화계가 자신의 생일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가 의문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만화인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한국 만화계의 생일을 제대로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한국 만화계의 생일이 아닌 날이 한국 만화계의 생일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1996년의 오늘은 <청소년 보호를 위한 유해 매체물 규제에 대한 법률안>으로 청소년 정서를 보호한다는 미명으로 만화책이 유해 매체로 지정되어 만화책에 대해 심의가 가해지고, 만화책의 시중 판매가 금지되는 등 만화책에 대한 제재가 심해지자 만화가들은 만화 자유를 오치며 여의도 광장에서 <만화 심의 철폐를 위한 범 만화인 결의대회>를 연 날입니다. 이듬해 7월에 청소년보호법이 발효되자, 범 만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다음 달에 열린 3회 서울 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 행사장에서 창작의 자유 수호, 심의 철폐 등을 주장하며 ‘만화 심의 철폐를 위한 범 만화인 결의대회’가 열린 11월 3일을 만화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 만화 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1999년부터 舊 문화관광부의 후원 아래 한국만화가협회 등 관련 단체가 공동으로 ‘오늘의 우리만화’ 시상식을 주최하여 작품성과 창작성이 뛰어난 작품을 ‘오늘의 우리만화’ 선정·발표하는 등 정계 차원에서 만화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만화의 날은 2001년에는 공식 기념일로 승인되어 그 해에 제1회 만화의 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만화의 날에는 관련 설명회를 포함, 코스프레 쇼, 캐리커처 혹은 카툰 전시회 및 토론회 등 각종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2009년, 2011년 만화의 날에는 오늘의 우리만화 시상식이 병행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2011년에 열린 11회 만화의 날 행사장에서 만화가들은 <2011 만화인 선언>을 통해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을 촉구하며, 디지털만화규장각에서 서명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그 해 12월 29일에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이듬해 8월 18일에 발효되었습니다. 서론은 여기까지, 지금부터 한국 만화계에 묻고 싶습니다. 한국 만화계는 정녕 자신의 생일을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저는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만화의 날을 한국 만화의 생일로 알고 있지, 결코 한국 만화계의 어떤 사건을 기념하는 날로 알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만화계의 생일은 언제일까요?

최초의 한국 만화는 관재(貫齋) 리도영(李道榮, 1884 ~ 1933) 화백이 그린 목판 시사 만화 <삽화(揷畵)>입니다. <삽화>는 <대한민보>에 연재되었는데, <대한민보>는 대한자강회를 계승한 애국계몽 운동인 대한협회가 1908년부터 발행한 월간 신문 <대한협회보> 발행이 중단되면서 1909년 6월 2일부터 창간한 일간 신문입니다. 이 <대한민보>의 창간호에 <삽화> 1회가 실림으로써 당시 왜인들의 만행을 풍자 및 경고함과 동시에, 신문에 만화가 실릴 수 있는 길을 터놓는 데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삽화>는 주권을 일제에게 빼앗긴 경술국치로 말미암아 <대한민보>가 폐간될 때까지 계속 연재되었습니다.

관재 리도영 화백의 <삽화>는 단순·과장·풍자라는 만화의 3요소를 담고 있고, 배포를 목적으로 인쇄된 정기 간행물에 연재 형식으로 게재되었으며, 다양한 만화적 표현기법을 창안함으로써 최초의 한국 만화라 불러도 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한국만화가협회와 한국시사만화가협회는 이 날을 기념하고자 2009년의 그 날에 ‘한국만화 100주년전’을 포함한 각종 기념 행사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만화계는 이 멀쩡한 최초의 한국 만화가 발표된 날을 제쳐 두고 오로지 만화 탄압에 대한 저항 운동만을 이유로 한국 만화계의 생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날을 만화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으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한국 만화계의 생일이 아닌 날이 한국 만화계의 생일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은 이는 역사 감각이 부족한 탓인바, 사람이 자신의 나이를 모르는 것과 같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결국 ‘만화의 날’은 한국 만화계가 제 생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실토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태어난 이래 국군의 날이 대한민국군의 생일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군복무를 하면서 저는 대한민국군의 생일이 아닌 날이 대한민국군의 생일 행세를 하게 된 경위를 알았습니다. 전역 후, 대한민국군의 모태는 한국 광복군이므로 한국 광복군 창군일을 국군의 날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읽고, 그간 속아 온 스스로에게 분노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국군의 날을 대한민국군의 모태인 한국 광복군이 창설된 1940년 9월 17일로 바꾸고, 기존 국군의 날은 ‘국방의 날’로 명칭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주장하면서, 지금부터라도 모두에게 한국 만화계의 생일을 제대로 알려주어야 할 필요성도 느꼈습니다. 역사 감각 부재자는 반드시 망한다는 이 말은 일본놈년들보다도 우리 스스로에게 먼저 들려 줘야 할 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만화계에 감히 고합니다. 만화의 날을 104년 전에 최초의 한국 만화가 발표된 6월 2일로 바꾸고, 기존 만화의 날은 ‘만화 자유 수호일’ 혹은 ‘만화 심의 철폐를 위한 범 만화인 결의대회일’로 명칭을 바꿔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역사 감각을 찾으셨으면 합니다.